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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시공점과 영적 시공점
유대 민족처럼 수천 년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림의 슬기와 용기와 신앙으로 역사의 맥락이 이어 온 족속은 없을 것이다. 무위의 기다림이 아니라 여호와의 때와 약속을 기다리는 신앙의 기다림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통해 역사하신다. 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생과 사의 때, 심고 거둘 때 등 만사에 때가 있다고 지혜자는 말한다(전3:1-8). 열 달이 차야 태아가 출산하며 시간이 차야 곡식이 여물고, 사람의 성장도 시간의 밭에서 여무는 법이다. 서릿 바람이 불어야 파리떼가 죽고 일본 침략자들도 시간이 다하매 물결처럼 물러갔다. 악의 때도 시간이 차야 밤처럼 물러간다. 그런데 크리스찬의 시간은 물리적 자연 시간 외에 예수 안에서 신앙의 영적 시간으로 이중 경험이 된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으며, 영원을 현재로 소유하고 2,000년 전 십자가 그때 그 장소를 내 영적 현시공점으로 소유하는 일이다. 신앙의 눈으로 복음화된 통일 한국을 보고 교계의 똥파리들이 서릿 바람에 자취를 감출 것을 현시공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예수칼럼 : 김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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