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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절규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김소월은 철새가 나는 하늘을 보고 "공중에는 길이 있는가 나는 열십자 한복판에 섰다"고 했다. 일본의 다꾸보꾸라는 시인은 죽을 사 자를 일백 번 모래 위에 써보고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입을 통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 문제로 몸살을 했다.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자살을 하는가. 불란서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끌로드시몽은 허무주의자였다. 할 말도 쓸 말도 의미도 목적도 없지만 그저 산다고 했다. 까뮈는 몽유병자 같은 [이방인]을 썼고 사르트르는 출구 없는 [방]을, 헤밍웨이는 행동적 허무주의를 주제로 한 [노인과 바다]를 쓰고 자살을 했다. 괴테는 죽을 때 빛을 찾았다. 철학에도 구원은 없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는데 무지를 안다고 했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참회적 자서전에서 "오호라 괴롭다"고 죄를 참회했고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 하셨다(마11:28).'

    -예수칼럼 : 김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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